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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시대 바둑, 장기대회
작성자 브레인TV
등록일 200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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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7대 임금 세조는 조선의 역대 군왕들 중에 바둑과 장기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가장 높았던 임금이다.



세조실록에 보면 임금이 ‘오행위기응골도(五行圍碁鷹鶻圖)’를 만들어 보외편(譜外篇)에 넣고 신하들을 불러서 오행위기법(五行圍碁法)을 지으라고 명했으나 마땅치 못하자 임금이 직접 글을 썼다는 기록이 있으며 몇 차례나 대신들을 불러 모아 상품을 내걸고 장기시합을 시켰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옛날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 임금 무제가 바둑을 좋아하니 당시 바둑국수급 실력자의 수가 278명이나 되었으며 양무제는 이들 고수들의 바둑품계를 守拙(수졸)·若愚(약우)·鬪力(투력)·小巧(소교)·用智(용지)·通幽(통유)·具體(구체)·坐照(좌조)·入神(입신) 등 9계급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초단에서 9단까지 단위의 효시라고 한다.



조선 초기 세조시대에도 임금이 바둑·장기에 관심을 두자 바둑·장기를 좋아하는 명사들이 많았다. 영의정을 지낸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좌의정을 지낸 보진재 노사신(盧思愼), 영의정을 지낸 구치관(具致寬), 최항(崔恒), 황수신(黃守身),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육신전’을 쓴 추강 남효온(南孝溫), 대사헌을 지낸 사가 서거정(徐居正), 선당판사를 지낸 승려 일암(一菴), 영의정을 지낸 상당부원군 한명회(韓明澮) 등이 당대의 바둑·장기를 좋아했던 명사들이다.



세조8년(서기1462년) 12월 27일 왕조실록의 기록. 정해일, 햇무리가 나타났다. 임금이 오행위기응골도를 보외편에 넣고 한계희(韓繼禧), 임원준(任元濬)에게 명하여 오행위기법을 짓게 하니 두세 번 수정해 고쳤으나 그래도 마땅치 못하자 임금이 직접 글을 쓰기를



“위기는 극(極)에서 시작한다. 오행의 돌이 서로 공격도 하고 양옆으로 끼이기도 하고 에워싸기도 하면서 구획(경계선)을 점점 넓혀 상대방의 극(極)을 취하면 승부가 끝난다. 국로(局路)는 81점으로 괘수(掛數)의 극과 정확히 맞는다.”



이 글을 한계희 등에게 보이니 그들이 신묘함에 탄복했다. 이에 주해(註解)를 붙여서 인쇄하라고 명했다.



(丁亥日暈. 上以五行圍碁鷹鶻圖入譜外篇, 命韓繼禧、任元濬製五行圍碁法, 再三修改, 猶未當, 上卽下筆曰: “圍碁乃立極。 五行子相擊挾打圍, 積畫取極, 能事畢. 局路八十一義, 掛數配極. 乃示繼禧等 歎服其神 命註觧, 印之.)



세조임금의 명을 받아 오행위기법을 인쇄한 한계희는 당대의 권력자인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조카이다. 위의 왕조실록 기록만 봐서는 ‘오행위기응골도’가 어떤 그림인지 ‘오행위기법’이 어떻게 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상대방의 극을 탈취하면 승부가 끝난다’고 했는데 그 극(極)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리송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판의 점수가 81점이라고 했으니 가로세로 9줄의 작은 바둑판이며 지금의 19줄 바둑판과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세조11년(서기1465년) 6월 신사(辛巳)일의 왕조실록에 나온 이야기.



임금이 영의정 신숙주와 상당부원군 한명회, 좌의정, 구치관, 우의정, 황수신, 좌참찬 최항, 육전청당상(六典廳堂上)과 승지 등을 불러 내구마(內廐馬)의 말 3필을 상품으로 내걸고 장기 시합을 두게 했다.



이 시합에서 신숙주, 한명회, 구치관이 이겨서 상품인 말 1필씩 타갔는데 임금이 장기시합에서 진 황수신과 최항에게도 말 1필씩을 하사했다.



세조실록 40권에 보면 세조12년 12월 10일 신숙주와 노사신이 상희(象戱)를 두었는데 신숙주가 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희는 상기지희(象棋之戱)의 약칭이다. 장기놀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장기를 상아(象牙)로 만들었기 때문에 장기를 상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조선초기에는 편상희(便象戱)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만이 두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 두는 장기를 편상희라고 칭한다. 세조임금이 여러 대신들을 불러 모아 두었던 장기가 아마 편상희였는지도 모른다.



전설에 의하면 좌의정을 지낸 노사신(盧思愼)은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장기를 즐겨서 상대방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놀았는데 차(車)가 잡히면 항상 애걸복걸하면서 물리자고 청했기 때문에 차가 죽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원컨대 노정승의 車만큼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출처> 바둑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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